꿈이 꽃이 된 도시, 수원화성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 할아버지인 영조와 함께 조선 후기 중흥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임금입니다. 그리고 광인(狂人) 으로 낙인되어 죽어간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잃고, 그의 나이 24살이 되던해에 왕위에 올라 18세기 후반 조선의 왕권 강화와 정치 개혁을 위해 이끈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린나이에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 그 죽음이 여러 당파간의 정쟁으로 인한 것임을 잊지 않고 있었던 임금으로써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여행을 함께 하세요!


수원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조선 명당인 수원으로 옮기면서 건설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강력한 왕권에 대한 꿈이 오늘 걸었던 수원화성의 첫 출발점 입니다.



수원화성을 가기위해서는 수원역에서 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수원역에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수원화성 성곽길이 대략 6km 정도 거리가 되기 때문에 입구까지는 버스를 이용해 체력안배(!)를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버스를 타고 팔달문 앞 팔달시장 로터리에서 내리면 길 건너편으로 수원화성에 오르는 입구가 보입니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는데, 다행히 오늘은 '여행주간' 이라서 무료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수원화성 뿐 아니라 화성행궁 까지 함께 하루여행 일정으로 잡을껄 하는 후회가 생깁니다. 무료니까요!


'수원화성'은 옛 화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을 말합니다. 이 성곽길을 걷는 것이 오늘의 여행입니다. 그리고 '화성행궁' 은 말 그대로 수원화성 내에 있는 행궁(임금이 잠시 머무르는 궁) 을 얘기합니다. 


'무료' 로 시작된 수원화성 하루여행은 처음부터 큰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바로 그것인인데요.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 팔달문 관광안내소에서 부터 시작된 오르막길을 대략 20~30분 정도 쉬엄쉬엄 정도 오르면 성곽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서남암문' 을 만나게 됩니다.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다 보니 별로 먼길은 아니었는데, 워낙 경사가 가파른 길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던 모양입니다.



수원화성의 성곽을 따라 걷다 중간중간 여러 성곽시설들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하루여행의 출발지였던 '팔달문' 처럼 동서남북으로 성곽의 문(門) 들이 있고, 장군이나 지휘관들이 머물며 군령을 내렸던 '장대(將臺)' 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공심돈'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정자인 '각루', 그리고 성곽의 비밀 통로였던 '암문(暗門)' 이 있는데요. 이런 시설들은 동암문, 서암문 처럼 놓여진 각 방향대로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각각의 시설물들의 위치와 용도들이 적혀있는 안내문을 읽으면서 수원화성을 걷다보면 이 수원화성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성곽길 정상에 만난 서남암문(西南暗門) 입니다. 서남쪽에 위치한 몰래 다니던 문 이라는 뜻이죠. 여기까지 올라왔으면 이제 더이상의 '부담스런' 오르막길은 없습니다.


팔달문에서 시작된 오늘의 하루여행은 성곽을 반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게 되는데, 서남암문까지는 오르막길이고 그다움 서장대까지는 산정상에 놓여진 평탄한 길이 계속됩니다. 서장대(西將臺) 에서 수원화성의 서쪽문인 화서문까지는 내리막길입니다.



수원화성을 걷는 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이겠지만, 서장대에서 보는 풍경은 수원화성 코스중 단연코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르며 흘린 땀을 한번에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전망이 서장대에 오른 즐거움을 더욱 크게 해 줍니다.


서장대에서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멀리 서북각루와 화서문이 보입니다. 화서문(華西門) 은 수원화성의 서쪽 문입니다. 서북각루와 서북공심돈이 함께 있어 사진찍이에 좋은 포토존을 만들어 줍니다.



화서문에서 부터 북쪽 문인 장안문(長安門) 까지는 오늘 일정중 가장 '평온한' 길 입니다. 성곽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은 일반 민가와 접해 있어 오히려 색다르기까지 합니다. 성곽너머로는 차가 다니는 큰길이 있어 성곽을 벗어나 동네로 들어온 느낌입니다.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북쪽에 위치한 문으로 정문 입니다. 수원화성은 특이하게도 북쪽문을 정문으로 설계되었는데, 왕이 머무는 한양(서울) 이 수원화성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안문을 지나면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 을 만나게 됩니다. 수원화성은 그 중앙에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이 있는데, 그 북쪽 수문이 바로 화홍문 입니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생존하기 위해 '물' 은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면에서 수원화성은 여러가지 자연조건을 갖춘 천혜의 성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홍문을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동장대' 인 연무대 입니다. 오늘은 이 연무대 앞 넓은 터에 연을 날리는 분들이 많아서 하늘 높이 나는 연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도 적당해서인지, 생각보다 크기가 큰 연들이 꽤 높이까지 날아오르는걸 보니, 수원화성의 성곽들과 무척 잘 어우러지는 모습입니다.


연무대를 지나 수원화성의 동쪽문인 창룡문까지 이르면 수원화성의 성곽여행은 어느정도 정리가 됩니다. 동네를 끼고 평탄한길을 한참 걷다보면 남수문까지 이르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수원화성 여행입니다.


남수문까지 내려오면 왼쪽으로는 순대타운으로 유명한 지동시장, 오른쪽으로는 영동시장이 나오고, 그 영동시장 건너편이 오늘 여행의 출발점인 인, 수원화성의 남쪽문 팔달문 입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18년이 지난 1794년 치밀한 계획과 설계, 2년 9개월간의 공정을 거쳐 수원화성이 완성됩니다. 당대 최고의 실학자이며 과학자였던 정약용이 없었다면 정조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품을 딛고 보다 강력한 왕권의 강화를 위해 건설된 수원화성은 축조된지 두세기가 흐른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어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조선 성곽 축조의 꽃이자, 계획도시 건설의 원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수원화성. 그곳에 가을이 더욱 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